나는 작은 실천을 하다보면 세상이 정말이지 바뀔 줄 알았다. 에코라는 단어를 따라다니며 만족스러워했다. 텀블러 사용이 유난스럽다고 여겨지던 때부터 텀블러를 들고다니며 영수증도 빨대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왔고, 친구들과 행사를 만들때면 집에 있는 모든 용기를 꺼내 빵이며 떡이며 음료며 담아왔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애쓰다보면 기후위기는 해결이 되는줄 알았다. 사실 할 수 있는게 그게 다라고 생각했다. 기후위기는 북극곰의 문제이고, 몰디브가 물에 잠기는 지구촌 어딘가의 문제이지만 나라는 사람에게 먼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당장 내 삶을 흔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2018년 폭염을 마주했다. 살인적인 폭염은 그저 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부터 사라지게 만들었다. 에어컨없는 오래된 집에서 선풍기를 아무리 돌려도 쪄죽을듯한 더위가 집 안 곳곳에 머물며 잠을 잘때조차도 내 가족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실내에 머물러도 폭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매번 북극곰에 대한 연민으로 바라보던 기후변화가 너무 무서워졌다. 운좋게도 여름을 무사히 보냈고, 가족들은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올해도 에어컨 없이 잘 버텼네~’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여름의 공포안에서 앞으로 미친 속도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을 마주할 나는 돈도 없고, 힘도 없어서 어느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 깨닫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한 능력도 없고 힘도 없는 그저 그런 소소한 일상은 몇년이 지나고 몇십년이 지나도 같을거라서. 내가 50대가 되어도 한없이 늙고 약한 엄마 한명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처참하게 느껴졌다.

위기라고 부를 만큼 이 기후 문제가 얼마나 최악인지 알아버렸는데, 모두가 불구덩이로 달려가는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 있는건 너무 힘들고 우울한 문제였다. 물론 개인적 실천은 중요하다. 세상은 바뀌어야만 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우리도 위기에 대응해나가야하니까. 하지만 기후위기 앞에 개인적 실천은 환경오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이 아니라 달라야한다고 생각했다.환경 오염에 관심을 가지고 쓰레기 문제,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도 너무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기후위기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건 너무 명확했다. 기후위기는 단지 환경오염으로 바라보기엔 너무나도 시급한 인권의 문제였다. 기후위기는 단지 북극곰의 문제라기엔, 개인적 실천을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라기엔 지금 당장의 너무 큰 위험이며, 그냥 내가 평범한 일상을 안전하게 살 수 있느냐, 내 곁의 사람을 지키냐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탄소를 열심히 배출해온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 지금 눈에 보이는 실천만을 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될 때 정말 위험한건 모두에게 위협으로 닥칠 재난보다도, 최악의 위기안에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무너져내릴 사람들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논의도, 대응책도 어느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감히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결정이라면 그럴싸한 말들로 아무리 포장을 해도 어떤 누구의 삶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조롱밖에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정의했다. 일상에서 비건을 실천하고, 석탄발전소에 투자하지 않는 은행으로 은행을 바꾸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책 논의구조에 들어갈 수 없더라도 이 문제를 계속 바라보고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제대로 된 정책과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변화를 만들고 있는 그룹들에 서명으로라도 힘을 보태려고 한다. 위기를 제대로 마주하고, 하찮고 힘없는 나라도 무언가 계속 목소리를 내는게 그게 작은 실천 아닐까.

벼리_

'개인적 실천' 외치면서 살아온 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너무 공감가는 글이에요. 저도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 줄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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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인권이 위협받는 경험, 그리고 이제 앞날을 내다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아요. 사실 글을 읽으며 '대단한 내가 되면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익명의키위새 님의 "내가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저에게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기고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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