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빵집에서 종종 바게뜨를 산다. 비건 빵집이 아닌 이곳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빵이기도 하지만 워낙 바게뜨를 좋아해서 전혀 불만은 없다.
빵집의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서서 바로 오른편에 있는 멜라닌 쟁반에 유산지를 한 장 깔고 집게도 하나 집는다. 그다음엔 바구니 혹은 철판 위에 가지런히 놓인 바게뜨들 중 하나를 집게로 골라 유산지 위에 올려놓는다. 이 빵집의 바게뜨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포장 안 된 상태로 진열돼 있다는 점이다. 쟁반을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빵모자에 마스크를 쓴 점원이 “썰어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괜찮다고 답하고 카드를 내민다. 점원이 비닐봉지를 꺼내려 손을 움직이려 하는 찰나 외친다. “그냥 종이에 싸서 들고 가면 돼요!”
처음 두 번은 어쩐지 용기가 안 나서(도대체 왜...) 비닐봉지에 담긴 바게뜨를 조용히 건네받았다. 가게에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그러나 이 빵집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으려면 계속 비닐봉지에 담긴 바게뜨를 받아올 순 없었다.
세 번째 바게뜨를 사러 간 날은 종일 일이 안 풀려서 자신에게 잔뜩 성이 난 상태였는데, 또 바게뜨와 함께 비닐봉지를 사는 짓까지 저지르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분노에 힘입어, 드디어 계산대에서 소신을 밝혔다. “아, 저, 그냥 종이에 싸서 가져갈게요!” 마스크 덕분에 점원의 표정을 파악할 순 없었으나 눈빛에서 어렴풋이 물음표를 감지했다. “바로 근처 살아서 괜찮아요. 괜히 쓰레기만 나오고…” 변명하듯 덧붙이면서 주섬주섬 유산지로 바게뜨 가운데를 감싸들고 빵집을 나왔다.
손에 종이를 두른 바게뜨 하나 쥐었을 뿐인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났다. 첫째는 이제 집에 가서 좋아하는 바게뜨를 뜯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빵집과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고, 셋째는 작지만 확실한 실천을 했기 때문이다(물론 아직 매번 종이를 소비한다는 문제가 남았지만). 심심한 바게뜨 하나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이토록 복잡하다. 바게뜨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