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4년 여름 본격적인 채식인이 되기로 마음 먹었고, 그 이후 이따금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 온 비건지향 또는 비건인 사람이다. 기후위기 시대,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반복되고 있으니, 그럴 때마다 스스로 채식인이라는 점이 다행스럽다. 하지만 처음 채식을 시작하게 된 건 꼭 기후위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나의 채식 이유 변천사다.
떡볶이에 타협하는 친구들을 보며
채식인이 되기 전, 주위에 채식을 하는 친구들이 서너 명 정도 있었다. 그들에게 채식의 이유를 물어 본 적은 없었지만, 동물권이나 윤리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라고 혼자 넘겨 짚었던 기억이다. 그들의 채식생활은 이따금 떡볶이로 타협되기도 하였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외식이 아닐 경우, 집에서라도 채식을 서서히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기 악몽을 많이 꾼 것도 채식을 고려하게 된 이유가 되었는데, '고기'를 먹을 때마다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남의 살을 먹을 때마다 쫓기는 꿈이나 살해 위협을 받는 등등의 악몽을 꾸었고, 지금도 그 악몽의 이유를 뚜렷하게 밝혀낼 수 없었지만, 악몽을 꾸고 싶지 않아서도 점점 육식을 즐기지 않게 되었다.
강정마을? 닭강정? 넌 너무 구려!
채식 직전 만나던 애인은 채식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친구들이 채식인이라고 자주 말했었다. 나도 속으로 채식에 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데이트를 할 때면 잡식을 했고, 나는 내 실천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채식에 대한 생각을 나누지 않았었다. 어느날, 강정마을에 대한 어떤 행사가 준비된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무심코 '강정이니까 닭강정이랑 과자 강정 같은 거랑 강정들을 준비하면 재밌겠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따라온 답변은 "그들은 비건이라서 절대 허락 안 할껄. 그런 건 절대 할 수 없어!"라고 면박을 받았다. 그냥 알려주는 어투였다면 마음에 맺히지 않았을텐데, 그 말이 마치 "넌 비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런 한심한 아이디어나 내놓는거야."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수치를 채식으로 극복했다!
그 이후 내가 채식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무시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한편으로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는 고통받는 동물들이라고 하는 채식의 장작이 있었고 이 장작들에게 불을 지핀 것은 '넌 구려'라는 마음의 소리였다. 나는 그날 느낀 수치심과 열패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 채식을 시작했다. 이상한 이유로 스타트하게 된 채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면박을 주었던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동물권에서 페미니즘! 기후위기 대응까지.
그 이후의 채식 이야기는 좀 심심하다. 피터싱어 <동물해방>으로부터 시작해서 캐럴 제이 애덤스<육식의 성정치>로 이어진 채식의 이유들이 내 안에서 쌓여갔고, 요즘은 기후위기 대응의 한 방법으로서도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비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한 <육식의 성정치>인데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이유가 뭐가 됐든 비건은 즐겁다 -
난 어릴 때부터 멋있게 살고 싶었고, 안 멋있게 느껴지는 걸 견디지 못해서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좋은 것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기 보다는 안 좋은 것을 피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내 채식의 이유는 한 번도 거창했던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채식이 즐겁냐고 하면 확실히 즐겁다. 왜냐하면 마음에 걸리는 게 별로 없어서, 그게 좋다.
채식을 시작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그것을 유지하게 되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앞으로는 채식이 힘겨운 실천의 영역으로부터 자연스러운 선택의 영역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본다. 물론 그 전에 지구가 망하지 않았을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지구 어떻게 해? 라는 질문을 하며 다음 시간에는 더 무쓸모한 수다를 가지고 오도록 하겠다. 그럼, 다음 호까지 안녕~~~!
* 이번 호 햄스터의 질문
좋아하는 채식 요리나 채식 맛집, 채식 쇼핑몰 정보를 댓글로 알려주시면 유용할 것 같아요. 무쓸모한 수다에 쓸모있는 댓글을 남겨주시면 어떠실까요! 물론 글에 대한 감상을 남겨주셔도 좋아요.
꺄 익명의햄스터 님 새 글을 기다렸어요!!!
저는 템페를 좋아하는데요. 데쳐서 샐러드에 얹어 먹거나 후라이팬에 기름 넣고 구어먹어요.
주로 사먹는 '파아프 템페' 홈페이지를 처음 들어가봤는데, 홈페이지도 뭔가 멋지네요 ㅎㅎ 구경해보셔요 ㅎㅎ
http://www.paaptempeh.com/mac/index.html
저는 불광역 근처에 있는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1층 <카페별꼴>에서 비건으로 변경한 바닐라크림라떼 먹는 걸 좋아해요. 스타벅스 비건 메뉴들보다 맛있다고 느꼈어요. ㅎㅎ
마라탕을 주문할 때 채수로 고기빼고라고 외치며 원하는 재료를 이야기하면 정말 맛있는 비건마라탕을 먹을 수 있어요. 광화문에 오시면 #라향각 광화문 (비건이요라고 외치면 사장님이 알아서 채수로 쓱쓱-)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야채나 두부를 편하게 잘라서, 올리브유에 치지직 볶듯이 익히다가 후추를 양껏 넣고, 연두로 간을 해서 밥이랑 같이 먹는 연두두부덮밥을 좋아해요. 팬 하나로 요리할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 각자가 좋아하는 재료를 모아다가 한데 넣고 덮밥처럼 먹으면 따뜻하고 포근하고 맛있어요! 신촌의 베지베어에서 된장이불덮밥을 먹고 너무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 간편하게 따라한 버전이었어요!
와 너무 맛있다라고 생각한 맛집중 하나는 망원역에 있는 가원이에요! 비건옵션이 가능한 곳이라서 짬뽕과 칠리가지를 비건으로 꼭!!! 드셔보시길 추천해요!!!!
육식의 성정치!! 저도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책이에요. 누가 저한테 동물권 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꼭 말하고 다니는 책이에요. 저에게 비건과 페미니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던 책이라 너무 많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 책을 읽던 주위의 분위기마저 생각날 정도로,,
저는 망원역의 어라운드그린을 정말 좋아해요. 월급을 받은 주말에는 꼭 가서 먹고 오는 곳이에요. 그리고 망원 근처에 당도 라는 젤라또 집이 있는데요. 거기에 비건 젤라또를 팔아요! 진짜 모든 맛이 다 맛있어요. 하지만 논비건도 있어서 사장님께 오늘 비건은 뭐예요? 라고 물어보면 아주 친절히 답변해주세요. 합정역 근처에 파도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도 정말 좋아요. 논비건 음료도 있고 비건 음료도 있어서 사장님께 여쭤보면 어떤게 비건인지 아주 친절히 설명해주세요. 여성작가전시공간이 있어서 가면 전시를 볼 수도 있고 여성작가들의 굿즈도 살 수 있어요! 그리고 공간이 너무 아늑하고 좋은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