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호주에서는 큰 산불이 났고 대한민국 영토 보다 넓은 12.4만 제곱 킬로미터가 불에 탔다. 호주 전체로 따지면 숲의 20% 이상이 잿더미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맘 때 환경단체였던 직장을 그만두고 요가를 다니는 중이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마음이 신이 나야 했지만, 내 마음은 아플 때가 많았고, 가만히 있을 때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5년이 채 되지 않는 직장생활도, 4년이 채 되지 않는 연애도 모두 허탈하게 끝나 있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부어도 부어도 차오르지 않는 독을 앞에 두고 지내온 기간들이 내 몸을 아프게 했다.

요가 수업에 가서는 딱히 내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 받는 분위기여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몸의 정렬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실패한 환경활동가도, 연인의 오랜 거짓말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가원에서의 어느 날 나의 요가 선생님은 호주 산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호주의 산불 뉴스를 보고 내내 그 생각이 났고, 자신의 몸의 일부가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그 아픔이 전해졌다고 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환경에 관련된 할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해볼 생각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외면하고 싶어했던 환경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출신성분(?)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관심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 돌아와 앉으니 마음이 뛰었다. 한편으로는 하늘이 원망스러운 기분이었다. 왜 기후위기나 환경은 잊어버리고 살 수 없는 것일까. 알고 나서는 외면할수도 벗어날 수도 없기에 괴롭게 느끼면 굴레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직업인으로서 활동은 종료되었지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 요가 선생님처럼. 더 이상 유능한 활동가가 될 필요가 없었다.

우연히 호주 산불로부터 전해져 온 아픔과 부조리가 요가 선생님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고, 선생님의 의도와는 상관 없는 영향으로, 나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호주 산불이 많은 것을 바꾸었겠지만 게 중에는 이처럼 긍정적인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일은 언제나 절망과 우울 안에서 아주 작은 긍정들을 발굴해나가는 일이 아닐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이 없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가 너무 힘드니까. ㅎㅎ)

그래서 여러분께 드리는 익명의 햄스터의 질문 : 호주 산불로 인해 당신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나리
사실 저의 일상에는 변화가 크게 없었어요. 어찌보면 슬픈일인데.. 일적으로는 호주산불과 같은 환경재앙으로 채식해라, 기후위기는 현실이다 등 원래 하던 말들을 사람들에게 전보다 설득하기 쉬워진 것 같아요.
트리
@동물해방물결_윤나리 저도 비슷해요. 일상 자체에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슬프기도 하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큰 일이 있고 나니, 사람들과 이러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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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번아웃과 호주 산불이 왠지 모르게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 몸은 번아웃도 겪고 산불의 아픔을 공감하기도 하나봐요. 몸의 정렬과 마음의 위로가 되는 요가 생활이 부럽기도 하고, 저도 작은 긍정들을 발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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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_
호주산불이 지금 우리가 배출한 탄소때문이 아니라 이전 세대가 배출한 탄소로 발생한 재앙이라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어요. 몇 년 후에는 얼마나 더 큰 기후재난들이 발생할지, 그리고 그 속에서 제가 안전할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아요. 지금도 기후우울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데 그때는 제가 저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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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
지리적으로 가깝고, 멀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강원도에 어마어마한 산불이 났던 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내 일상에서 관심을 끄고 거리를 두면,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냥 잊어버리는 거 아닐까. 관심을 끄지 않으면서도 너무 마음을 무겁지 않게 일상에서 균형을 잘 맞추면서 사는 것을 잘 생각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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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일은 언제나 절망과 우울 안에서 아주 작은 긍정을 발굴해 나가는 일, 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저도 요가 수련에 이따금씩 가는데 몸의 정렬과 호흡에 집중할 때 부정적인 에너지를 덜어내는 그 느낌이 좋아요. 호주산불이 만든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가 있다면, 강렬한 이미지로써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었다는 것? 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일상에는... 음 호주산불 직후에 기자회견 준비하며 피켓을 많이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ㅎ............. 이미지랑 영상 모아서 자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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